꿈에 들다
사람의 꿈에 들어가 정보를 넣거나 빼거나 하는 것이 가능한 세계의 이야기다.
주인공 톰 콥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현실과 꿈의 두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실의 문제는 그가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입국할 수 없는 도망자 신분이라는 점으로 꿈의 문제는 살벌한 그의 무의식이 아내의 멜 형상을 빌려 자꾸 일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우연한 기회에 거물과 손을 잡게 된 코브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말을 믿고 특정 정보를 인셉션(Inception)*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타깃의 꿈에 침투한다.
*본뜻은 시작, 시작이지만 영화에서는 꿈에 침입해 정보를 심어주는 행위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꿈의 직장이네요
설정, 설정, 설정
인셉션은 내러티브보다는 소품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는 불친절한 영화다.
꿈에 얽힌 웅대한 설정은 연출을 위해 소모하는 소품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확보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목적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미장센에 있다.
보이는 장면은 복잡하지만 장면에 담긴 의미는 얄팍하다.
인셉션은 기성품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꿈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겹치는 꿈의 혼란, 이 모든 소재가 사이버 펑크 장르의 크리셰다.
얘기로만 보면, 워쇼스키 자매 매트릭스가 훨씬 멋졌다.
복잡한 계산을 통해서 오늘 점심은 떡볶이로 정했습니다
진짜 이야기
인셉션 설정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영화 내내 끝없이 설명된다.
3단계로 겹치는 꿈과 그 아래의 림보.무의식. 무의식을 자각하기 위한 상징 킥(Kick) 기타 모든 요소는 코브가 그의 일행과 함께 타깃인 로버트 피셔의 꿈에 침입하기 위해 동원된 설정이다.
문제는 줄거리 전면에 떠오른 이 같은 설정이 인셉션의 주요 대립 구조(진짜 줄거리)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상하게 비중 높은 로버트 피셔 개인의 갈등과 해소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로버트의 성장은 모두 코브 일행의 하이스트(Heist)로 진행된 조작이기 때문이다.
인셉션의 주인공,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주체적인 인물은 어디까지나 코브이며, 코브가 넘어야 할 진정한 대적은 의뢰인(사이토)도 작전 대상(로버트 피셔)의 꿈도 아닌 코브의 아내 멜이다.
주인공은 원래 뒤에 등장하는 분, 법 너무 마지막 아니었어요?
이야깃거리
그래도 인셉션은 코브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피셔의 이야기를 전방에 배치했다.
내러티브의 깊이보다 미장센의 화려함을 선택한 결과다.
영화의 묘한 결말은 그래서 별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콥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시점에서 그의 세계가 현실인지 꿈인지를 따져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코브가 현실에 있든 꿈에 있든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이해가 반전될 수는 없다.
‘인셉션’은 꿈(무의식)에 심어준 작은 단서들이 현실의 거대한 파멸로 나타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설정은 이야기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설정이 이야기의 목적으로 성립되는 것은 단편의 양식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셉션은 소재에 매몰된 장편이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반복한다.
좋은 영상이었지만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2011. 11 20.
꿈에서 중력이 바뀌는 액션은 CG가 아니라 촬영 세트를 통째로 만들어 360도 회전시키면서 찍은 장면이다.
거리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기차 역시 실제 기차를 가져와 운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