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과 외교적 갈등이 고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참모가 대통령 집무실에 보고하러 들어갔다.
마침 창밖을 보던 박정희 대통령이 등을 돌리는데 불을 뿜는 듯한 눈빛이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것 같았다.
필자가 겪었던 무협지같은 장면 한 때 사찰에서 행하는 참선회에 참가하였는데, 사찰이 안양에 있어 서울에서 정시 퇴근하여도 지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넓은 법당 정면에는 비구니 스님이 출입문 쪽을 정면으로 향하고 앉아 있었고, 참선하는 사람들은 좌우 양벽을 등에 지고 앉아 중앙을 향하고 있었다.
엄숙하게 참선하고 있는 법당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며 정면에 앉아 있는 주지스님의 눈과 잠시 마주쳤으나 거리가 2030m는 되고 조명이 어두웠는데도 그 푸른 눈빛에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무협지에 나오듯 눈에서 새파란 불이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 현실이었다.
내가 경험한 무협전 같은 장면 2, 내가 검도 3단까지 갔던 검도 도장에는 선생님의 2030대 초반 아들 두 명도 함께 수련했다.
당시 장남은 3단, 차남은 4단이었다.
한번 수련이 끝나고 자리에 가서 큰 팔을 벗고 정좌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니 그 검도 선생은 큰아들을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검도장에서 선생님의 신호로 수련을 마치면 수련생들은 각자 제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는다.
아마 수련의 종말을 고하고 모두 자리로 돌아갈 때 “야, 와!
”라고 아들을 불렀을 것이다.
그 기세는 무섭기 그지없어 검도 선생의 칼이 사방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키 작은 쪽의 검도선생이 휘두르는 죽도가 위로 펼쳐질 때 원래는 농구장 수련원 체육관의 높은 천장에 닿는 것 같았다!
사족: 처음 다른 도장에 가서 어디서 검도를 했는지 물으면 그 도장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을 텐데, 지금도 나는 처음 그 선생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게 된다.
내 검도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분은 검도의 정신과 예법, 품격을 철저히 가지고 계셨다.
그 선생님은 수련생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본인보다 나이가 더 어리더라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분은 사고방식이 고루하여 연령에 관계없이 검도 단위별로 상석을 엄격히 배치하였고 수련시간 중에도 엄격하여 수련이 끝나고 차례대로 예를 거행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선생님의 도장을 벗어나 다른 도장으로 가보니 관장이 관원을 부르는 호칭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ㅇㅇㅇ씨라고 불렀고 관원 상호간에는 형제 ㅇㅇㅇ씨였다.
내심으로는 그런 분위기를 꽤 나쁘게 보고 있었다.
지난해 말 그 도장에서 함께 검도를 하던 여학생을 15년 넘게 지나서야 만났다.
우리 도장에 아침 반만 와 있어서 몰랐는데 연말 합동수련을 위해 저녁에 와서 만났다.
그는 여중생 때부터 대학에 갈 때까지 함께 수련해 당시 함께 검도를 하던 아들과 같은 학년이었다.
지금은 30대 중반이다.
처음엔 호수면을 끼고 있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깔끔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칼이 왜 그렇게 예쁘냐고 감탄하자 선생님은 도장을 가리키며 “그 도장에서 배웠잖아요”라고 말했다.
아!
너도 나처럼 도량수련을 자부하고 검도의 고향으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